posted by 포스힐러 2014. 4. 2.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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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머릿속에 아주 어렸을적 봤던 영화중 한장면이 아주 오랜동안 기억에 떠나지 않고 남아있었다.
바로 기타와 벤조의 강렬한 더블플레이 장면인데... 당시 어린기억에도 그 속주에 엄청나게 놀라며 본것이 기억난다.
그래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아있었는데... 갑자기 그 음악이 듣고 싶어져 찾아보게 되었다.

근데 문젠... 그 영화 제목도 몰랐다. 단지 댐을 만들어 수몰예정지역에 레프팅을 하러 간 친구들이 그 지역에 갔다가 사건과 사고를 당하게 되고,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는 영화라는것 정도를 기억했다.
어렴풋이 남은 기억은 "탈출" 이라는 영화였던것 같은데...

이런이런...
탈출을 주제로 한 영화가 어디 한둘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웹서핑을 하다가 하다가...
실마리를 풀어낸것이 있다.

바로
"기타와 벤조 연주가 나오는 영화" 이걸 주제로 찾아보면 어떤가 하여 서핑하다가 결국 찾아낸것이 
바로 '존 부어맨 감독의 Deliverance' 라는 영화였다. 국내엔 서바이벌 게임이라는 타이틀로 출시되었다고 한다.
'서바이벌 게임' 검색어로 치면...
아마 각종게임들 동영상이 뜰것이다. 반드시 부어맨 서바이벌게임 이런식으로 검색해야한다. ㅋ

영화 도입부에 그들이 마을 입구에서 어떤 조로증(?)의 소년을 만나는데, 그 소년이 벤조를 들고 있었고, 로니콕스가 기타를 퉁기는데 거기에 반응하여 벤조를 연주하는걸 듣고 처음엔 호기심에 서로 주거니 받거니 연주하다 나중엔 정말.. 말그대로 '신명나게' 연주 배틀을 한다.

상대가 기타 치는걸 보면서 어쭈? 쫌 하네? 하는 표정의 시크한 소년...이라고 하기엔 다소 나이든 모습인데...


그 소년의 벤조연주를 끌어내는 기타연주의 리드.. 그게 사실 더 대단하다고 느꼈다.


영화는 1972년 발표된것이라 한다. 그 후 40년 지난 두명의 모습




30여년이 흘러서야 다시 보게된 장면이지만, 지금봐도 너무 강렬하다.
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기분좋아지는 연주!

영상을 찾다보니 어린소년들로 구성된 밴드가 이 곡을 재해석해서 바이올린까지 넣고 협연한것이 있어 올려본다.
벤조라는 악기... 서부음악에 단골로 등장하는 악긴데.. 참 경쾌한 음색이 기분을 좋게 하는것같다.
즐감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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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4. 3. 1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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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라 하면 대부분 이름없는 떠돌이 용병, 기사들이 주인공을 맡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결국 공주와 결혼하여 왕국까지 물려받는 성공스토리로 가기 쉽기때문이다.


그런데... 킹스퀘스트는 주인공이 왕, 또는 왕자다.  이미 가질거 다 가진 사람들이 모험하는 이야기가 뭐 재미있겠나 생각하겠지만, 매니아층의 열광적 성원을 업고 꾸준히 속편이 나올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중.. 필자의 기억에 남는 시리즈는 단연 6탄이다.


사실 이전까지 필자는 킹스퀘스트란 게임이 있는줄도 몰랐다. 

당시 게임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집에 놀러갔는데 그친구가 이 킹스퀘스트6의 오프닝을, 당시 학생신분에 보유하고 있기 힘들었던 미디모듈을 연결하여 보여주는데...


한마디로 뻑 가고 말았다.


알렉산더라는 왕자가 마법의 거울속에 비친 먼 왕국의 카시마 공주를 보고 길을 떠난다는 내용.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3D효과 애니메이션에 디즈니 동화에나 나올법한 감미로운 멜로디...

거기에... 대대로 내려오는 식상한 줄거리이긴 하지만...

탑에 갇힌 공주를 구하러 가는 주인공... 왠지 남자라면 가슴이 뛰지 않는가?

아직도 생생히 머릿속에 기억난다.

카시마 공주가 알렉산더를 기다리며 새를 날리는데, 마법의 거울로 그걸 보고 있던 알렉산더왕자가

"크씨마! (카시마를 나름 본토발음으로 쓴것.. 실제 들어보면 딱 저리 들린다.) 웨잇~! 웨잇...."

하며 괴로워하는 장면을 잊을수가 없다.


페르시아의 왕자 라는 게임이 인기를 끌고, 그 게임을 모티브로 하여 마법의 성 이라는 노래가 만들어져 공전의 히트를 한 때가 있었다.  페르시아의 왕자도 결국 혈혈단신의 왕자가 공주를 구하러 가는 여정이고, 이 게임도 결국 난파선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왕자가 혈혈단신으로 공주를 구하러 가는 이야기인데 스케일면에서는 단연 킹스퀘스트6쪽이 우세하다.


당시 필자가 듣고 감동한 곡이 바로 

"Girl in the tower" 

리메이크도 여러번 된 유명한 곡이다.

킹스퀘스트를 아는 분들은 향수를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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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4. 1. 14.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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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게임 판타지카에 나오는 용인 소니아 3등신 SD캐릭터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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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4. 1. 1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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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스토리 오류인지 모바일에서는 1번트랙만 나옵니다. PC모드로 하시면 전곡을 들으실수 있습니다.

1. MSX ORIGINAL stage music

2. MSX ORIGINAL extra music

3. Forest stage - arrange version

4. Ice wall stage - arrange version

5. MSX ORIGINAL ending music


꿈의대륙 (또는 몽대륙) ... MSX의 레전드가 되어있는 게임이다.

원래 MSX1 에서 남극탐험이라는 이름으로, 펭귄이 나와서 남극 얼음길을 질주하는 단순한 길피하기 레이싱 게임(?)으로 출시되었던 게임이 있었는데, 그 후속작이 실로 어마어마하게 버전업이 되어 나왔던것이다.




불치병에 걸린 공주를 구하기 위해 꿈의 대륙에 있다는 만병통치과일을 찾아 모험하는 우리의 펭귄군..

그러나 가는데 쉽게 갈수 있겠는가...



험난한 길, 구덩이에 정체모를 적들에, 공룡에...거기다 배고프니 물고기도 먹어줘야지..뭔 아이템은 그리 많이 필요한지..(심지어 없으면 구간을 깨지 못하는 아이템까지..)


어렵게 어렵게 만병통치 과일을 얻었지만... 이제 돌아가는일이 또 고역...

기껏 돌아가보면...



거의 십중 팔구는 이런 배드엔딩이다. 기껏 과일 구해갔더니 죽어있는 공주...

왜! 왜! 설렁탕 ...아니, 사과를 사왔.. 아니, 얻어왔는데 먹지를 못하냔 말야..!

한동안, 내가 이런 엔딩 보자고 그리 몇시간씩 투자하며 게임 한건가 하는 허탈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 밝혀진 놀라운 사실...

바로 공주가 살아나는 해피엔딩, 이른바 진엔딩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감동의 진엔딩이다. 기껏 따온 사과를 공주가 낼름 받아먹고 일어난다. 그래... 엔딩이란 이래야 하는거야..


근데 나중에 알고나니.. 그 진엔딩의 조건이란게...

정말 황당하게도 게임상에서 일시정지 누른 횟수가 1번 또는 5번, 또는 9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뭐 이런경우가 다있나?  (나중에 제대로 밝혀진 조건은  4N-3 번이었다. 즉, 13번도 된다는것.. 이걸 모르고 필자는 F1키를 눌러야 나오는 지도화면을 그렇게 아껴서 보았으니...


그나마 이걸 알기전엔... 워프를 하지 말아야한다느니, 한번도 안죽고 클리어해야한다느니.. 뭐 별별 추측들이 난무하였기에.. 그걸 다 해보다보니 게임의 어느시점에 어떤 적이 나오는지까지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몽대륙은 원래 죽으면 모든 아이템, 모든 고기가 0이 된다 그러나...

궁극의 노리코 신공이 있으니...

위와같은 레벨 셀렉트화면에서  NORIKO 라고 치면 

죽어도 다시 컨티뉴를 해보면 갖고 있던 아이템들이 모두 살아있는채로 시작할수 있다. 단, 물고기수는 0 이 된다.

KAZUMI 라고 치면 아이템들은 모두 사라지고 물고기수가 보존되는데, 물고기는 일종의 코인으로 아래와 같은

상점에서 아이템을 살때 쓰인다. 




상점에는 좋은아저씨 상점이 있다. 여긴 물건을 정찰가(?)에 판다.



나쁜 아저씨 상점. 여긴 가격이 거의 두배가까이 높다. 하지만 좋은 물건들이 많기때문에 사지 않을수 없다.


 

희귀하게 나오는 싼타 상점. 여기는 물건값이 없다. 그러나... 공짜라고 눈 뒤집혀 클릭하다가는 사단이 난다. 단 한개만 가질수 있는것이다. 다른곳에서 살수 없는 물건을 사야한다.


왼쪽 밑의 슬롯머신 아이콘이 있는데...



들어가보면 물고기를 걸고 슬롯머신을 하여 물고기 수를 불릴수 있다.

근데 이게 딱 3번밖에 못하고 강제로 종료되는데... 목걸이를 사면 무제한으로 슬롯머신을 땡길수 있다. 목걸이를 아마도 담보로 맡기고 플레이하는것 같다.

그래서 상점의 필수아이템 첫번째는 바로 목걸이가 된다. ㅋ

필자는 사실 몽대륙게임보다 이 슬롯머신을 더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마음에 성인들이나 가는 오락실은 못가니 여기서나마 슬롯머신을 즐겨보자는 보상심리랄까?

앵두 2개나 4개정도는 사실 별 어렵지 않게 맞출수 있기때문에

어지간한 시간만 투자하면 물고기는 999 를 채울수 있다. 그후엔.. 물고기.. 거들떠도 안본다. ㅋ

포도나 레몬을 세개 맞추면 큰 배수차를 먹을수 있지만, 잘못되었을때 물고기 건것이 다 날아갈수도 있기에..

그런것보단 오히려 앵두가 처음에 나오는걸 선호했다.

처음에 일단 앵두가 하나 나오고 시작하면 일단 본전은 무조건 되찾기에, 편하게 안심하고 돌릴수 있었으니말이다.




국내판 꿈의대륙 팩 :  재미나라는 회사.. 참 감회가 새롭다. 당시 세운상가에 자리잡았던 이 회사에서 정말.. 세계에 유래가 없는 주변기기들이 많이 생산되었었다.

MSX1 을 MSX2 로 만들어주는 "투카드" (롬팩부에 투카드를 끼우면 MSX2의 소프트웨어를 플레이할수 있었다.)라던가

롬팩 슬롯을 4개까지 늘려주는 확장슬롯이라던가...

나중엔 소프트웨어까지도 직접 개발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었는데... 

그분들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실지..


때론 그때.. 1시간여를 테이프레코더를 틀어놓고 게임이 로딩되길 기다리던 때가 생각난다. 그 긴시간을 두근대며 기다렸던 설렘..


그때의 향수를 아는분께 잠시라도 추억을 떠올리는 포스팅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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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4. 1. 7.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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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보면 좋은 글이라 생각하여 널리 알리자는 뜻에서 올립니다.

출처 : http://dotty.org/2699099


허성도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강연 중에 일부분인데요..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대략 우리가 좀 비루하게 인식하기도 하는 조선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가 하는 부분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한국역사의 특수성

○ 미국이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중·고등학교의 수학 교과과정을 바꾸었다면

우리는 우리를 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결론은 그것 입니다.

-역사를 보는 방법도 대단히 다양한데요. 우리는 초등학교 때 이렇게 배웠습니다.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다.’ 아마 이 가운데서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하신 분들은 이걸 기억하실 것입니다.

500년 만에 조선이 망한 이유 4가지를 달달 외우게 만들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사색당쟁, 대원군의 쇄국정책, 성리학의 공리공론, 반상제도 등 4가지 때문에 망했다.” 이렇게 가르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면 ‘아, 우리는 500년 만에 망한 민족이구나,

그것도 기분 나쁘게 일본에게 망했구나.’ 하는 참담한 심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까 나로호의 실패를 중국, 미국, 소련 등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듯이

우리 역사도 다른 나라에 비추어 보아야 됩니다.

조선이 건국된 것이 1392년이고 한일합방이 1910년입니다.

금년이 2010년이니까 한일합방 된 지 딱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러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다른 나라 왕조는 600년, 700년, 1,000년 가고

조선만 500년 만에 망했으면 왜 조선은 500년 만에 망했는가 그 망한 이유를 찾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다른 나라에는 500년을 간 왕조가 그 당시에 하나도 없고 조선만 500년 갔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선은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갔을까 이것을 따지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1300 년대의 역사 구도를 여러분이 놓고 보시면 전 세계에서 500년 간 왕조는 실제로 하나도 없습니다.

서구에서는 어떻게 됐느냐면, 신성로마제국이 1,200년째 계속되고 있었는데 그것은 제국이지 왕조가 아닙니다.

오스만투르크가 600년째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제국이지 왕조는 아닙니다.

유일하게 500년 간 왕조가 하나 있습니다. 에스파냐왕국입니다.

그 나라가 500년째 가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에스파냐왕국은 한 집권체가 500년을 지배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 ‘어, 이 녀석들이 말을 안 들어, 이거 안 되겠다. 형님, 에스파냐 가서 왕 좀 하세요.’

그래서 나폴레옹의 형인 조셉 보나파르트가 에스파냐에 가서 왕을 했습니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한 집권체이지 단일한 집권체가 500년 가지 못했습니다.

전세계에서 단일한 집권체가 518년째 가고 있는 것은 조선 딱 한 나라 이외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잠깐 위로 올라가 볼까요.

고려가 500년 갔습니다. 통일신라가 1,000년 갔습니다. 고구려가 700년 갔습니다. 백제가 700년 갔습니다.

신라가 BC 57년에 건국됐으니까 BC 57년 이후에 세계 왕조를 보면 500년 간 왕조가 딱 두 개 있습니다.

러시아의 이름도 없는 왕조가 하나 있고 동남 아시아에 하나가 있습니다.

그 외에는 500년 간 왕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통일신라처럼 1,0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고구려, 백제만큼 700년 간 왕조도 당연히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린 것은 과학입니다.

-그러면 이 나라는 엄청나게 신기한 나라입니다. 한 왕조가 세워지면 500년, 700년, 1,000년을 갔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럴려면 두 가지 조건 중에 하나가 성립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 선조가 몽땅 바보다, 그래서 권력자들, 힘 있는 자들이 시키면 무조건 굴종했다,

그러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500년, 700년, 1,000년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선조들이 바보가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고 다시 말씀드리면

인권에 관한 의식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주인이라고 하는 의식이 있다면,

또 잘 대드는 성격이 있다면, 최소한도의 정치적인 합리성, 최소한도의 경제적인 합리성,조세적인 합리성,

법적인 합리성, 문화의 합리성 이러한 것들이 있지 않으면

전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이러한 장기간의 통치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기록의 정신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을 보면 25년에 한 번씩 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동학란이나 이런 것은 전국적인 규모이고,

이 민란은 요새 말로 하면 대규모의 데모에 해당합니다.

우리는 상소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이, 기생도 노비도 글만 쓸 수 있으면 ‘왕과 나는 직접 소통해야겠다,

관찰사와 이야기하니까 되지를 않는다.’ 왕한테 편지를 보냅니다.

그런데 이런 상소제도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왜? 편지를 하려면 한문 꽤나 써야 되잖아요. ‘그럼 글 쓰는 사람만 다냐,

글 모르면 어떻게 하느냐’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언문상소를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도 불만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글줄 깨나 해야 왕하고 소통하느냐,

나도 하고 싶다’ 이런 불만이 터져 나오니까 신문고를 설치했습니다.

‘그럼 와서 북을 쳐라’ 그러면 형조의 당직관리가 와서 구두로 말을 듣고 구두로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이래도 또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여러분, 신문고를 왕궁 옆에 매달아 놨거든요.

그러니까 지방 사람들이 뭐라고 했냐면 ‘왜 한양 땅에 사는 사람들만 그걸하게 만들었느냐,

우리는 뭐냐’ 이렇게 된 겁니다.

그래서 격쟁(?錚)이라는 제도가 생겼습니다. 격은 칠격(?)자이고 쟁은 꽹과리 쟁(錚)자입니다.

왕이 지방에 행차를 하면 꽹과리나 징을 쳐라. 혹은 대형 플래카드를 만들어서 흔들어라,

그럼 왕이 ‘무슨 일이냐’ 하고 물어봐서 민원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이것을 격쟁이라고 합니다.

○ 우리는 이러한 제도가 흔히 형식적인 제도겠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정조의 행적을 조사해 보면, 정조가 왕 노릇을 한 것이 24년입니다.

24년 동안 상소, 신문고, 격쟁을 해결한 건수가 5,000건 입니다.

이것을 제위 연수를 편의상 25년으로 나누어보면 매년 200건을 해결했다는 얘기이고

공식 근무일수로 따져보면 매일 1건 이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영조 같은 왕은 백성들이 너무나 왕을 직접 만나고 싶어 하니까 아예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정해서

 ‘여기에 모이시오.’ 해서 정기적으로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서양의 왕 가운데 이런 왕 보셨습니까? 이것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이 나라 백성들은

그렇게 안 해주면 통치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제도가 생겼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렇게 보면 아까 말씀 드린 두 가지 사항 가운데 후자에 해당합니다.

이 나라 백성들은 만만한 백성이 아니다. 그러면 최소한도의 합리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 합리성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오늘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조금 김새시겠지만 기록의 문화입니다. 여러분이 이집트에 가 보시면,

저는 못 가봤지만 스핑크스가 있습니다. 그걸 딱 보면 어떠한 생각을 할까요?

중국에 가면 만리장성이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 계신 분들은 거의 다 이런 생각을 하셨을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 중국 사람들은 재수도 좋다, 좋은 선조 만나서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관광달러가 모이는 구나’

여기에 석굴암을 딱 가져다 놓으면 좁쌀보다 작습니다. 우리는 뭐냐. 이런 생각을 하셨지요?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그러한 유적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베르사유의 궁전같이 호화찬란한 궁전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습니다.

여러분, 만약 조선시대에 어떤 왕이 등극을 해서 피라미드 짓는 데

 30만 명 동원해서 20년 걸렸다고 가정을 해보죠.

그 왕이 ‘국민 여러분, 조선백성 여러분, 내가 죽으면 피라미드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자제 청·장년 30만 명을 동원해서 한 20년 노역을 시켜야겠으니 조선백성 여러분, 양해하시오.’

그랬으면 무슨 일이 났을 것 같습니까? ‘마마, 마마가 나가시옵소서.’

 이렇게 되지 조선백성들이 20년 동안 그걸 하고 앉아있습니까? 안 하지요.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문화적 유적이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왕이 베르사유궁전 같은 것을 지으려고 했으면 무슨 일이 났겠습니까.

‘당신이 나가시오, 우리는 그런 것을 지을 생각이 없소.’ 이것이 정상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는 그러한 유적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대신에 무엇을 남겨 주었느냐면 기록을 남겨주었습니다. 여기에 왕이 있다면, 바로 곁에 사관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간단합니다. 여러분께서 아침에 출근을 딱 하시면,

어떠한 젊은이가 하나 달라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하시는 말을 다 적고,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을 다 적고,

둘이 대화한 것을 다 적고, 왕이 혼자 있으면 혼자 있다, 언제 화장실 갔으면 화장실 갔다는 것도 다 적고,

그것을 오늘 적고, 내일도 적고, 다음 달에도 적고 돌아가신 날 아침까지 적습니다.

기분이 어떠실 것 같습니까?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왕은 그 누구도 독대할 수 없다고 경국대전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사극에서 살살 간신배 만나고 장희빈 살살 만나고 하는 것은 다 거짓말입니다.

왕은 공식근무 중 사관이 없이는 누구도 만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인조 같은 왕은 너무 사관이 사사건건 자기를 쫓아다니는 것이 싫으니까

어떤 날 대신들에게 ‘내일은 저 방으로 와, 저 방에서 회의할 거야.’ 그러고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사관이 마마를 놓쳤습니다.

어디 계시냐 하다가 지필묵을 싸들고 그 방에 들어갔습니다.

인조가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데서 회의를 하는데도 사관이 와야 되는가?’ 그러니까 사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마, 조선의 국법에는 마마가 계신 곳에는 사관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적었습니다.

너무 그 사관이 괘씸해서 다른 죄목을 걸어서 귀향을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다음 날 다른 사관이 와서 또 적었습니다. 이렇게 500년을 적었습니다.

사관은 종7품에서 종9품 사이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무원제도에 비교를 해보면

아무리 높아도 사무관을 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왕을 사사건건 따라 다니며 다 적습니다. 이걸 500년을 적는데,

어떻게 했냐면 한문으로 써야 하니까 막 흘려 썼을 것 아닙니까?

그날 저녁에 집에 와서 정서를 했습니다. 이걸 사초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왕이 돌아가시면 한 달 이내, 이것이 중요합니다.

한 달 이내에 요새 말로 하면 왕조실록 편찬위원회를 구성합니다.

사관도 잘못 쓸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영의정, 이러한 말 한 사실이 있소?

이러한 행동한 적이 있소?’ 확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즉시 출판합니다. 4부를 출판했습니다. 4부를 찍기 위해서 목판활자,

나중에는 금속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4부를 찍기 위해서 활자본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사람이 쓰는 것이 경제적입니까?

쓰는 게 경제적이지요.

그런데 왜 활판인쇄를 했느냐면 사람이 쓰면 글자 하나 빼먹을 수 있습니다.

글자 하나 잘못 쓸 수 있습니다. 하나 더 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후손들에게 4부를 남겨주는데 사람이 쓰면 4부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후손들이 어느 것이 정본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판활자, 금속활자본을 만든 이유는 틀리더라도 똑같이 틀려라, 그래서 활자본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500년 분량을 남겨주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왕의 옆에서 사관이 적고 그날 저녁에 정서해서 왕이 죽으면

한 달 이내에 출판 준비에 들어가서 만들어낸 역사서를 보니까 전 세계에 조선만이 이러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6,400만자입니다. 6,400만자 하면 좀 적어 보이지요?

그런데 6,400만자는 1초에 1자씩 하루 4시간을 보면 11.2년 걸리는 분량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는 공식적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학자는 있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생각 안 드세요? ‘사관도 사람인데 공정하게 역사를 기술했을까’

이런 궁금증이 가끔 드시겠지요?

사관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역사를 쓰도록 어떤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말씀드리죠.

세종이 집권하고 나서 가장 보고 싶은 책이 있었습니다. 뭐냐 하면 태종실록입니다.

‘아버지의 행적을 저 사관이 어떻게 썼을까?’ 너무너무 궁금해서 태종실록을 봐야겠다고 했습니다.

맹사성이라는 신하가 나섰습니다.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저 사관이 그것이 두려워서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세종이 참았습니다. 몇 년이 지났습니다. 또 보고 싶어서 환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겠다.’ 이번에는 핑계를 어떻게 댔느냐면

 ‘선대왕의 실록을 봐야 그것을 거울삼아서 내가 정치를 잘할 것이 아니냐’

그랬더니 황 희 정승이 나섰습니다. ‘마마, 보지 마시옵소서.’ ‘왜, 그런가.’

‘마마께서 선대왕의 실록을 보시면 이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 할 것이고

다음 왕도 선대왕의 실록을 보려할 것입니다. 그러면 저 젊은 사관이 객관적인 역사를 기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마께서도 보지 마시고 이다음 조선왕도 영원히 실록을 보지 말라는 교지를 내려주시옵소서.’ 그랬습니다.

이걸 세종이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들었습니다.

‘네 말이 맞다. 나도 영원히 안 보겠다. 그리고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봐서는 안 된다’는 교지를 내렸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왕 누구도 실록을 못 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중종은 슬쩍 봤습니다. 봤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안보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이 못 보는데 정승판서가 봅니까? 정승판서가 못 보는데 관찰사가 봅니까?

관찰사가 못 보는데 변 사또가 봅니까?

이런 사람이 못 보는데 국민이 봅니까? 여러분,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조선시대 그 어려운 시대에 왕의 하루하루의 그 행적을 모든 정치적인 상황을 힘들게 적어서

아무도 못 보는 역사서를 500년을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썼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 땅은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핏줄 받은 우리 민족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후손들이여, 우리는 이렇게 살았으니 우리가 살았던 문화, 제도, 양식을 잘 참고해서

우리보다 더 아름답고 멋지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라,

이러한 역사의식이 없다면 그 어려운 시기에 왕도 못 보고 백성도 못 보고

아무도 못 보는 그 기록을 어떻게 해서 500년이나 남겨주었겠습니까.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인의 보물일 뿐 아니라 인류의 보물이기에,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 놨습니다.

○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가 있습니다. 승정원은 오늘날 말하자면 청와대비서실입니다.

사실상 최고 권력기구지요. 이 최고 권력기구가 무엇을 하냐면 ‘왕에게 올릴 보고서,

어제 받은 하명서, 또 왕에게 할 말’ 이런 것들에 대해 매일매일 회의를 했습니다.

이 일지를 500년 동안 적어 놓았습니다. 아까 실록은 그날 밤에 정서했다고 했지요.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전월 분을 다음 달에 정리했습니다. 이 ‘승정원일기’를

언제까지 썼느냐면 조선이 망한 해인 1910년까지 썼습니다.

누구 보라고 써놓았겠습니까? 대한민국 국민 보라고 썼습니다.

유네스코가 조사해보니 전 세계에서 조선만이 그러한 기록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승정원일기’는 임진왜란 때 절반이 불타고 지금 288년 분량이 남아있습니다.

이게 몇 자냐 하면 2억 5,000만자입니다. 요새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이것을 번역하려고

조사를 해 보니까 잘하면 앞으로 50년 후에 끝나고 못하면 80년 후에 끝납니다.

이러한 방대한 양을 남겨주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선조입니다.

○ ‘일성록(日省錄)’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날 日자, 반성할 省자입니다. 왕들의 일기입니다.

정조가 세자 때 일기를 썼습니다. 그런데 왕이 되고 나서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쓰니까 그 다음 왕도 썼습니다. 선대왕이 썼으니까 손자왕도 썼습니다.

언제까지 썼느냐면 나라가 망하는 1910년까지 썼습니다.

아까 ‘조선왕조실록’은 왕들이 못 보게 했다고 말씀 드렸지요.

선대왕들이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정치했는가를 지금 왕들이 알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정조가 고민해서 기왕에 쓰는 일기를 체계적, 조직적으로 썼습니다.

국방에 관한 사항, 경제에 관한 사항, 과거에 관한 사항, 교육에 관한 사항 이것을 전부 조목조목 나눠서 썼습니다.

여러분, 150년 분량의 제왕의 일기를 가진 나라를 전 세계에 가서 찾아보십시오.

저는 우리가 서양에 가면 흔히들 주눅이 드는데 이제부터는 그럴 필요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언젠가는 이루어졌으면 하는 꿈과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책들을 전부 한글로 번역합니다.

이 가운데 ‘조선왕조실록’은 개략적이나마 번역이 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도 못 대고 있습니다.

이것을 번역하고 나면 그 다음에 영어로 하고 핀란드어로 하고 노르웨이어로 하고

덴마크어로 하고 스와힐리어로 하고 전 세계 언어로 번역합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탑재한 다음날 전 세계 유수한 신문에 전면광고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인 여러분, 아시아의 코리아에 150년간의 제왕의 일기가 있습니다.

288년간의 최고 권력기구인 비서실의 일기가 있습니다. 실록이 있습니다.

혹시 보시고 싶으십니까? 아래 주소를 클릭하십시오. 당신의 언어로 볼 수 있습니다.’

해서 이것을 본 세계인이 1,000만이 되고, 10억이 되고 20억이 되면

이 사람들은 코리안들을 어떻게 생각할 것 같습니까.

‘야, 이놈들 보통 놈들이 아니구나. 어떻게 이러한 기록을 남기는가,

우리나라는 뭔가.’이러한 의식을 갖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게 뭐냐면 국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한국이라고 하는 브랜드가 그만큼 세계에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은 이러한 것을 남겨주었는데 우리가 지금 못 하고 있을 뿐입니다.

○ 이러한 기록 중에 지진에 대해 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지진이 87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3회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249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2,029회 나옵니다. 다 합치면 2,368회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습니다.

우리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 때 이것을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계를 내면 어느 지역에서는 155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어느 지역은 200년마다 한 번씩 지진이 났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역을 다 피해서 2000년 동안 지진이 한 번도 안 난 지역에 방폐장, 핵발전소 만드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방폐장, 핵발전소 만들면 세계인들이 틀림없이 산업시찰을 올 것입니다.

그러면 수력발전소도 그런 데 만들어야지요. 정문에 구리동판을 세워놓고 영어로 이렇게 썼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가진 2,000년 동안의 자료에 의하면 이 지역은 2,000년 동안 단 한번도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곳에 방폐장, 핵발전소, 수력발전소를 만든다. 대한민국 국민 일동.’

이렇게 하면 전 세계인들이 이것을 보고 ‘정말 너희들은 2,000년 동안의 지진에 관한 기록이 있느냐?’

고 물어볼 것이고, 제가 말씀드린 책을 카피해서 기록관에 하나 갖다 놓으면 됩니다.

이 지진의 기록도 굉장히 구체적입니다. 어떻게 기록이 되어 있느냐 하면

 ‘우물가의 버드나무 잎이 흔들렸다’ 이것이 제일 약진입니다.

‘흙담에 금이 갔다, 흙담이 무너졌다, 돌담에 금이 갔다, 돌담이 무너졌다, 기왓장이 떨어졌다,

기와집이 무너졌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지진공학회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리히터 규모로 계산을 해 내고 있습니다.

대략 강진만 뽑아보니까 통일신라 이전까지 11회 강진이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11회 강진이,

조선시대에는 26회의 강진이 있었습니다. 합치면 우리는 2,000년 동안 48회의 강진이 이 땅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것을 계산할 수 있는 자료를 신기하게도 선조들은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 정치, 경제적 문제

○ 그 다음에 조세에 관한 사항을 보시겠습니다.

세종이 집권을 하니 농민들이 토지세 제도에 불만이 많다는 상소가 계속 올라옵니다. 세종이 말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나는가?’ 신하들이 ‘사실은 고려 말에 이 토지세 제도가 문란했는데 아직까지 개정이 안 되었습니다.’

세종의 리더십은 ‘즉시 명령하여 옳은 일이라면 현장에서 해결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개정안이 완성되었습니다.

세종12년 3월에 세종이 조정회의에 걸었지만 조정회의에서 부결되었습니다.

왜 부결 되었냐면 ‘마마, 수정안이 원래의 현행안보다 농민들에게 유리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농민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우리는 모릅니다.’ 이렇게 됐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 하다가 기발한 의견이 나왔어요.

‘직접 물어봅시다.’ 그래서 물어보는 방법을 찾는 데 5개월이 걸렸습니다.

세종12년 8월에 국민투표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찬성 9만 8,657표,

반대 7만 4,149표 이렇게 나옵니다. 찬성이 훨씬 많지요.

세종이 조정회의에 다시 걸었지만 또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대신들의 견해는 ‘마마, 찬성이 9만 8,000, 반대가 7만 4,000이니까 찬성이 물론 많습니다.

그러나 7만 4,149표라고 하는 반대도 대단히 많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상소를 내기 시작하면 상황은 전과 동일합니다.’ 이렇게 됐어요.

세종이 ‘그러면 농민에게 더 유리하도록 안을 만들어라.’해서 안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시하자 그랬는데 또 부결이 됐어요. 그 이유는 ‘백성들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모릅니다.’였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말이냐’하니 ‘조그마한 지역에 시범실시를 합시다.’ 이렇게 됐어요.

시범실시를 3년 했습니다. 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습니다.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조정회의에서 또 부결이 됐어요.

‘마마, 농지세라고 하는 것은 토질이 좋으면 생산량이 많으니까 불만이 없지만

 토질이 박하면 생산량이 적으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과 토질이 전혀 다른 지역에도 시범실시를 해 봐야 됩니다.’ 세종이 그러라고 했어요.

다시 시범실시를 했어요. 성공적이라고 올라왔어요.

세종이 ‘전국에 일제히 실시하자’고 다시 조정회의에 걸었습니다. 또 부결이 됐습니다.

이유는 ‘마마, 작은 지역에서 이 안을 실시할 때 모든 문제점을 우리는 토론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할 때 무슨 문제가 나는지를 우리는 토론한 적이 없습니다.’

세종이 토론하라 해서 세종25년 11월에 이 안이 드디어 공포됩니다.

조선시대에 정치를 이렇게 했습니다.

세종이 백성을 위해서 만든 개정안을 정말 백성이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를 국민투표를 해 보고

시범실시를 하고 토론을 하고 이렇게 해서 13년만에 공포·시행했습니다.

대한민국정부가 1945년 건립되고 나서 어떤 안을 13년 동안 이렇게 연구해서 공포·실시했습니까.

저는 이러한 정신이 있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법률 문제

○ 법에 관한 문제를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3심제를 하지 않습니까? 조선시대에는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조선시대에 3심제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형수에 한해서는 3심제를 실시했습니다.

원래는 조선이 아니라 고려 말 고려 문종 때부터 실시했는데, 이를 삼복제(三覆制)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사형수 재판을 맨 처음에는 변 사또 같은 시골 감형에서 하고, 두 번째 재판은 고등법원, 관찰사로 갑니다.

옛날에 지방관 관찰사는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재판은 서울 형조에 와서 받았습니다.

재판장은 거의 모두 왕이 직접 했습니다. 왕이 신문을 했을 때 그냥 신문한 것이 아니라 신문한 것을 옆에서 받아썼어요.

조선의 기록정신이 그렇습니다. 기록을 남겨서 그것을 책으로 묶었습니다.

그 책 이름이 ‘심리록(審理錄)’이라는 책입니다. 정조가 1700년대에 이 '심리록'을 출판했습니다.

오늘날 번역이 되어 큰 도서관에 가시면 ‘심리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왕이 사형수를 직접 신문한 내용이 거기에 다 나와 있습니다.

왕들은 뭐를 신문했냐 하면 이 사람이 사형수라고 하는 증거가 과학적인가 아닌가 입니다.

또 한 가지는 고문에 의해서 거짓 자백한 것이 아닐까를 밝히기 위해서 왕들이 무수히 노력합니다.

이 증거가 맞느냐 과학적이냐 합리적이냐 이것을 계속 따집니다.

이래서 상당수의 사형수는 감형되거나 무죄 석방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조선의 법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조선이 500년이나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 과학적 사실

○ 다음에는 과학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지동설을 주장한 것이 1543년입니다.

그런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에는 이미 다 아시겠지만 물리학적 증명이 없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지구가 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은 1632년에 갈릴레오가 시도했습니다.

종교법정이 그를 풀어주면서도 갈릴레오의 책을 보면 누구나 지동설을 믿을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출판금지를 시켰습니다.

그 책이 인류사에 나온 것은 그로부터 100년 후입니다. 1767년에 인류사에 나왔습니다.

-동양에서는 어떠냐 하면 지구는 사각형으로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은 둥글고 지구는 사각형이다,

이를 천원지방설(天圓地方說)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실은 동양에서도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얘기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여러분들이 아시는 성리학자 주자입니다, 주희.

주자의 책을 보면 지구는 둥글 것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황진이의 애인, 고려시대 학자 서화담의 책을 봐도 ‘지구는 둥글 것이다, 지구는 둥글어야 한다,

바닷가에 가서 해양을 봐라 지구는 둥글 것이다’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어떠한 형식이든 증명한 것이 1400년대 이순지(李純之)라고 하는 세종시대의 학자입니다.

이순지는 지구는 둥글다고 선배 학자들에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일식의 원리처럼 태양과 달 사이에 둥근 지구가 들어가고

그래서 지구의 그림자가 달에 생기는 것이 월식이다, 그러니까 지구는 둥글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1400년대입니다. 그러니까 선배 과학자들이 ‘그렇다면 우리가 일식의 날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월식도 네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할 것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이순지는 모년 모월 모시 월식이 생길 것이라고 했고 그날 월식이 생겼습니다.

이순지는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일식, 월식을 미리 계산해 내는 방법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은 오늘날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과학적인 업적을 쌓아가니까 세종이 과학정책의 책임자로 임명했습니다.

이때 이순지의 나이 약관 29살입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준 임무가 조선의 실정에 맞는 달력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동지상사라고 많이 들어보셨지요? 동짓달이 되면 바리바리 좋은 물품을 짊어지고

중국 연변에 가서 황제를 배알하고 뭘 얻어 옵니다.

다음 해의 달력을 얻으러 간 것입니다. 달력을 매년 중국에서 얻어 와서는 자주독립국이 못될뿐더러,

 또 하나는 중국의 달력을 갖다 써도 해와 달이 뜨는 시간이 다르므로 사리/조금의 때가 정확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조선 땅에 맞는 달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됐습니다.

수학자와 천문학자가 총 집결을 했습니다. 이순지가 이것을 만드는데 세종한테 그랬어요.

‘못 만듭니다.’

‘왜?’

‘달력을 서운관(書雲觀)이라는 오늘날의 국립기상천문대에서 만드는데 여기에 인재들이 오지 않습니다.’

‘왜 안 오는가?’

‘여기는 진급이 느립니다.’ 그랬어요.

오늘날 이사관쯤 되어 가지고 국립천문대에 발령받으면 물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행정안전부나 청와대비서실 이런 데 가야 빛 봤다고 하지요? 옛날에도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세종이 즉시 명령합니다.

‘서운관의 진급속도를 제일 빠르게 하라.’

‘그래도 안 옵니다.’

‘왜?’

‘서운관은 봉록이 적습니다.’

‘봉록을 올려라.’ 그랬어요.

‘그래도 인재들이 안 옵니다.’

‘왜?’

‘서운관 관장이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면 서운관 관장을 어떻게 할까?’

‘강한 사람을 보내주시옵소서. 왕의 측근을 보내주시옵소서.’

세종이 물었어요. ‘누구를 보내줄까?’

누구를 보내달라고 했는 줄 아십니까?

‘정인지를 보내주시옵소서.’ 그랬어요. 정인지가 누구입니까?

고려사를 쓰고 한글을 만들고 세종의 측근 중의 측근이고 영의정입니다.

세종이 어떻게 했을 것 같습니까? 영의정 정인지를 서운관 관장으로 겸임 발령을 냈습니다.

그래서 1,444년에 드디어 이 땅에 맞는 달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순지는 당시 가장 정확한 달력이라고 알려진 아라비아의 회회력의 체제를 몽땅 분석해 냈습니다.

일본학자가 쓴 세계천문학사에는 회회력을 가장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한 책이

조선의 이순지著 ‘칠정산외편(七政算外篇)’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달력이 하루 10분, 20분, 1시간 틀려도 모릅니다. 한 100년, 200년 가야 알 수 있습니다.

이 달력이 정확한지 안 정확한지를 어떻게 아냐면 이 달력으로 일식을 예측해서

정확히 맞으면 이 달력이 정확한 것입니다.

이순지는 '칠정산외편'이라는 달력을 만들어 놓고 공개를 했습니다.

1,447년 세종 29년 음력 8월 1일 오후 4시 50분 27초에 일식이 시작될 것이고

그날 오후 6시 55분 53초에 끝난다고 예측했습니다.

이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세종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 달력의 이름을 ‘칠정력’이라고 붙여줬습니다.

 이것이 그 후에 200년간 계속 사용되었습니다.

여러분 1,400년대 그 당시에 자기 지역에 맞는 달력을 계산할 수 있고

 일식을 예측할 수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 세 나라밖에 없었다고 과학사가들은 말합니다.

하나는 아라비아, 하나는 중국, 하나는 조선입니다.

그런데 이순지가 이렇게 정교한 달력을 만들 때 달력을 만든 핵심기술이 어디 있냐면

지구가 태양을 도는 시간을 얼마나 정교하게 계산해 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칠정산외편’에 보면 이순지는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5일 5시간 48분 45초라고 계산해 놓았습니다.

오늘날 물리학적인 계산은 365일 5시간 48분 46초입니다. 1초 차이가 나게 1400년대에 계산을 해냈습니다.

여러분, 그 정도면 괜찮지 않습니까?

------------------- 여기서부턴 수학에 관한 내용인데, 관심있는분만 읽어보셔요 -------------

-홍대용이라는 사람은 수학을 해서 ‘담헌서(湛軒書)’라는 책을 썼습니다.

‘담헌서’는 한글로 번역되어 큰 도서관에는 다 있습니다.

이 ‘담헌서’ 가운데 제5권이 수학책입니다.

 홍대용이 조선시대에 발간한 수학책의 문제가 어떤지 설명 드리겠습니다.

‘구체의 체적이 6만 2,208척이다. 이 구체의 지름을 구하라.’ cos, sin, tan가 들어가야 할 문제들이 쫙 깔렸습니다.

조선시대의 수학책인 ‘주해수용(籌解需用)’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sinA를 한자로 正弦, cosA를 餘弦, tanA를 正切, cotA를 餘切, secA를 正割, cosecA를 如割,

 1-cosA를 正矢, 1-sinA를 餘矢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런 것이 있으려면 삼각함수표가 있어야 되잖아요.

이 ‘주해수용’의 맨 뒤에 보면 삼각함수표가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제가 한 번 옮겨봤습니다.

예를 들면 正弦 25도 42분 51초, 다시 말씀 드리면 sin25.4251도의 값은 0.4338883739118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제가 이것을 왜 다 썼느냐 하면 소수점 아래 몇 자리까지 있나 보려고 제가 타자로 다 쳐봤습니다.

 소수점 아래 열세 자리까지 있습니다. 이만하면 조선시대 수학책 괜찮지 않습니까?

다른 문제 또 하나 보실까요?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眞線에 있다.

조선시대 수학책 문제입니다. 이때는 子午線이라고 안 하고 子午眞線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이미 이 시대가 되면 지구는 둥글다고 하는 것이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甲地와 乙地는 동일한 子午線上에 있다. 甲地는 北極出地, 北極出地는 緯度라는 뜻입니다.

 甲地는 緯度 37도에 있고 乙地는 緯度 36도 30분에 있다. 甲地에서 乙地로 직선으로 가는데 고뢰(鼓?)가

12번 울리고 종료(鍾鬧)가 125번 울렸다. 이때 지구 1도의 里數와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하라.

이러한 문제입니다.

이 고뢰(鼓? ) , 종료(鍾鬧)는 뭐냐 하면 여러분 김정호가 그린 대동여지도를 초등학교 때 사회책에서 보면

오늘날의 지도와 상당히 유사하지 않습니까?

옛날 조선시대의 지도가 이렇게 오늘날 지도와 비슷했을까? 이유는 축척이 정확해서 그렇습니다.

대동여지도는 십리 축척입니다.

십리가 한 눈금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왜 정확하냐면 기리고거(記里鼓車)라고 하는 수레를 끌고 다녔습니다.

기리고거가 뭐냐 하면 기록할 記자, 리는 백리 2백리 하는 里자, 里數를 기록하는,

고는 북 鼓자, 북을 매단 수레 車, 수레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만들었냐 하면 수레가 하나 있는데 중국의 동진시대에 나온 수레입니다.

바퀴를 정확하게 원둘레가 17척이 되도록 했습니다. 17척이 요새의 계산으로 하면 대략 5미터입니다.

이것이 100바퀴를 굴러가면 그 위에 북을 매달아놨는데 북을 ‘뚱’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북을 열 번 치면 그 위에 종을 매달아놨는데 종을 ‘땡’하고 치게 되어 있어요. 여기 고뢰, 종료라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5km가 되어서 딱 10리가 되면 종이 ‘땡’하고 칩니다. 김정호가 이것을 끌고 다녔습니다.

우리 세종이 대단한 왕입니다. 몸에 피부병이 많아서 온양온천을 자주 다녔어요.

그런데 온천에 다닐 때도 그냥 가지 않았습니다. 이 기리고거를 끌고 갔어요.

그래서 한양과 온양 간이라도 길이를 정확히 계산해 보자 이런 것을 했었어요.

이것을 가지면 지구의 지름, 지구의 둘레를 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까 원주를 파이로 나누면 지름이다 하는 것이 이미 보편적인 지식이 되어 있었습니다.

◈ 수학적 사실

○ 그러면 우리 수학의 씨는 어디에 있었을까 하는 것인데요,

여러분 불국사 가보시면 건물 멋있잖아요. 석굴암도 멋있잖아요.

불국사를 지으려면 건축학은 없어도 건축술은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최소한 건축술이 있으려면 물리학은 없어도 물리술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물리술이 있으려면 수학은 없어도 산수는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이게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졌던 의문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지었을까.

그런데 저는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 선생님을 너무 너무 존경합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어디인 줄 아십니까? 에스파냐, 스페인에 있습니다.

1490년대에 국립대학이 세워졌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옥스퍼드와 캠브리지는 1600년대에 세워진 대학입니다.

우리는 언제 국립대학이 세워졌느냐, ‘삼국사기’를 보면 682년, 신문왕 때 국학이라는 것을 세웁니다.

그것을 세워놓고 하나는 철학과를 만듭니다. 관리를 길러야 되니까 논어, 맹자를 가르쳐야지요.

그런데 학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김부식 선생님은 어떻게 써놓았냐면

 ‘산학박사와 조교를 두었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명산과입니다. 밝을 明자, 계산할 算자, 科. 계산을 밝히는 과, 요새 말로 하면 수학과입니다.

수학과를 세웠습니다. ‘15세에서 30세 사이의 청년 공무원 가운데 수학에 재능이 있는 자를 뽑아서

 9년 동안 수학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를 졸업하게 되면 산관(算官)이 됩니다. 수학을 잘 하면 우리나라는 공무원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서 찾아보십시오. 수학만 잘 하면 공무원이 되는 나라 찾아보십시오.

이것을 산관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산관은 계속 되었습니다.

이 산관이 수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산관들은 무엇을 했느냐,

세금 매길 때, 성 쌓을 때, 농지 다시 개량할 때 전부 산관들이 가서 했습니다.

세금을 매긴 것이 산관들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수학 상황을 알려면 무슨 교과서로 가르쳤느냐가 제일 중요하겠지요?

정말 제가 존경하는 김부식 선생님은 여기다가 그 당시 책 이름을 쫙 써놨어요.

삼개(三開), 철경(綴經), 구장산술(九章算術), 육장산술(六章算術)을 가르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이 유일합니다.

구장산술은 언제인가는 모르지만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최소한도 진나라 때 나왔을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좋은 책이면 무조건 다 주나라 문왕이 썼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 8장의 이름이 방정입니다. 방정이 영어로는 equation입니다.

방정이라는 말을 보고 제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저는 사실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부터

방정식을 푸는데, 방정이라는 말이 뭘까가 가장 궁금했습니다.

어떤 선생님도 그것을 소개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 보니까 우리 선조들이 삼국시대에 이미 방정이라는 말을 쓴 것을

저는 외국수학인 줄 알고 배운 것입니다.

○ 9 장을 보면 9장의 이름은 구고(勾股)입니다. 갈고리 勾자, 허벅다리 股자입니다.

맨 마지막 chapter입니다. 방정식에서 2차 방정식이 나옵니다. 그리고 미지수는 다섯 개까지 나옵니다.

그러니까 5원 방정식이 나와 있습니다.

중국 학생들은 피타고라스의 정리라는 말을 모릅니다. 여기에 구고(勾股)정리라고 그래도 나옵니다.

자기네 선조들이 구고(勾股)정리라고 했으니까.

여러분 이러한 삼각함수 문제가 여기에 24문제가 나옵니다.

24문제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당히 힘들게 풀었던 문제들이 여기에 그대로 나옵니다.

이러한 것을 우리가 삼국시대에 이미 교육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전부 서양수학인 줄 알고 배우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밀률(密率)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비밀할 때 密, 비율 할 때 率. 밀률의 값은 3으로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고려시대의 수학교과서를 보면 밀률의 값은 3.14로 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아까 이순지의 칠정산외편, 달력을 계산해 낸 그 책에 보면 ‘밀률의 값은 3.14159로 한다.

’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다 그거 삼국시대에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오늘날 플러스, 마이너스, 정사각형 넓이, 원의 넓이,

 방정식, 삼각함수 등을 외국수학으로 이렇게 가르치고 있느냐는 겁니다.

저는 이런 소망을 강력히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초등학교나 중·고등 학교 책에 플러스, 마이너스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우리 선조들은

늦어도 682년 삼국시대에는 플러스를 바를 正자 정이라 했고 마이너스를 부채, 부담하는 부(負)라고 불렀다.

그러나 편의상 正負라고 하는 한자 대신 세계수학의 공통부호인 +-를 써서 표기하자,

또 π를 가르치는 chapter가 나오면 682년 그 당시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우리는 π를 밀률이라고 불렀다,

밀률은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뜻이다, 오늘 컴퓨터를 π를 계산해 보면

소수점 아래 1조자리까지 계산해도 무한소수입니다.

그러니까 무한소수라고 하는 영원히 비밀스런 비율이라는 이 말은 철저하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밀률이라는 한자 대신 π라고 하는 세계수학의 공통 부호를 써서 풀기로 하자 하면

수학시간에도 민족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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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4. 1. 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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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Fray)는 원래 Xak에서 라토크가 마물들에게로부터 구해준 여자아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신을 구해준 라토크를 일편단심 그리며 쫓아다니다보니... 아예 자신의 스토리를 게임으로 만들게까지 이르렀으니...


예쁘장하고 귀여운데다가 주인공을 무조건 좋아라하며 따라다니는 모습.. 남자라면 이런 여동생 하나쯤 있었으면.. 하는 생각 안가져봤다면 거짓일거다.


그래서 그런가... Xak에서 단역이었던 그녀가 엄청난 오빠부대가 생기면서 주연으로 나서는 게임. 바로 사크 외전격인 프레이 라는 게임이다.


"아기자기" 라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게임음악. 듣고만 있어도 즐거워지고 기분좋아지는 음악이다. 뽈뽈거리며 뛰어다니는 프레이의 귀여운 모습이 금방이라도 떠오르는 음악.


프레이를 플레이하며 밤을 새웠던 분들께 향수를... 




마물들의 숲에서 라토크에게 구해진 프레이



라토크를 찾아나서기 위해 그리고 그에게 도움이 되어주기위해 마법전사가 되기로 결심, 마법학교에 입학하나.. 마법의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라토크가 좋아하는 동네 소꿉친구 에리스. 이 게임은 프레이의 시각에서 보여지기때문에, 에리스의 이름옆에 "라이벌" 에리스 라고 쓰여진것이 재미있다.






프레이는 우측에 현재 프레이의 상태가 얼굴에 표시된다. 이게 참 당시로선 대단한 아이디어였던것이.. 자그마한 도트캐릭터에서 표현 어려운 감정변화 그래픽을 이렇게 표현해줌으로 보다 현장감있게 전달하는방식.. 처음 접하면서 누가 이런 생각을 해냈는지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MSX판 프레이

PC엔진 듀오판 프레이



프레이는 MSX판, MSX turbo R판, PC98, PC엔진 듀오판으로 컨버젼되어 출시되었는데 그래픽이 약간씩 다르다.


MSX판

PC엔진 듀오판...인가 MSX터보R용인가.. 기억이 가물가물.. --;





MSX판 타이틀


PC엔진 듀오판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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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4. 1. 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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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카라는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갑자기 그려보고 싶어져서 반나절 걸려 그린 그림..

오랜동안 손을 놓고 있었지만 가끔은.. 그림을 그려보고 싶을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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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3. 12. 2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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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X2 판 XAK - The tower of Gazzel  Opening DEMO


가젤의 탑 - CM32L MIDI버전 BGM을 볼수 있는 링크를 소개한다.

갑자기 아침에 일어났을때 문득 생각나는 음악이 있다. 
어느땐가 큰 임펙트를 받았던 음악들이 주로 그렇게 떠오르곤 하는데

오늘 소개할 BGM은 바로 사크 - 가젤의 탑 이다.

필자는 아직 못잊는다. 최초 MSX동아리에서 신작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바로 이 가젤의 탑을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지금 보면 한참 빠지는 그래픽과 음원이지만 당시엔 이렇게 박력있는 오프닝에, 딱맞는 기막힌 분위기를 가진 BGM을 가진 데모를 보는것만해도 살떨리게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이 영상을 보는 내내 소름돋는 전율이 감돌았을정도로 너무 설레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 사크1,사크2 를 모두 클리어하고 사크의 세계관에 푹 빠져있던 필자였던지라 사크의 히어로 라토크가 마지막에 탑을 바라보며 씩 웃는 그 모습 하나만 가지고도 이 게임에 빠지기 충분했다. 

당시 MSX 터보R에 MT32를 연결하면 미디로 오프닝을 들을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거 하나 미디음으로 들어보려고 미디까지 구했던 기억이 있다.
결국 미디를 구했는데 이상하게 싱크가 안맞아 음악을 들을수 없었다는게 천추의 한이 되지만
PSG의 3중 화음가지고도 이렇게 박력있고 경쾌한 음악을 만들었다는데 대해 마이크로캐빈사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가젤의 탑에 나오는 스테이지음악들도 박력이 있고 너무 좋은곡들이 많다. 꼭 다 들어보길 추천한다.

가젤의 탑 전곡집 -CD판으로 나온것



MSX판 가젤의 탑 OST 전곡을 어떤분이 모아주셨다. 참.. 정성이 대단하다.



PC-98용 가젤의 탑 오프닝


약간... 음색이 다른데, 드럼비트는 훌륭하나... 필자를 반하게 한 본 멜로디부분이 약하게 나오면서 좀 아쉬운 감이 있다. 



가젤의 탑 - 엔딩데모


무너져가는 탑.. 안타깝게 라토크를 부르는 픽시, 프레이..

막판에 뿌연 연기사이로 라토크가 생환할때 달려드는 두여인... 라토크..에라 이 복받은 녀석..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ㅎㅎ




탑을 찾아가는 프레이와 픽시.. 언제봐도 프레이는 발랄하고 귀엽다.


라토크의 동료가 되어주는 혼과 바루나(맞나? --;)  그들이 없으면 못깨는 구간이 있다.


탑을 올려다보며 씨익 입꼬리를 올리는 이 장면...

필자는 이장면이 왜그리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 장면 보면 당시의 그 전율이 돈다.


평생 살면서... 들으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음악이 몇이나 될까.. 필자에겐 이 가젤의 탑 오프닝이 바로 그런곡중 하나이다.  지금의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과 비교할수 없는 그런 추억과 매력.. 느껴본자가 아니면 모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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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3. 11. 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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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ESS MAKER ORIGINAL SOUND TRACK

티스토리 오류인지 모바일에서는 1번트랙만 나옵니다. PC모드로 하시면 전곡을 들으실수 있습니다.



"네 딸은 뭐 됐어?"

어디서 들으면 나이 좀 먹은 부모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 "이상현상"을 주도한 것이 다름아닌 이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 이다.



당시로서는 육성시뮬이라는 특이한 장르를 접해본 사람이 거의 없었다. 

연애시뮬레이션같이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꾸준히 해야하는 그런 게임이 많았던 시절에


남자의 로망인 자신의 딸을 키우는 이야기는 그 설정만으로도 남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필자는 처음 이 게임을 접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런 게임이 나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이 게임 흥행은 따놓은 당상이라 생각하며 게임을 기획한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적이 있었다.

어쩌면 이리 시장에 "먹히는 게임"을 만들수 있을까.. 이런 아이디어를 어찌 냈을까..



눈에 넣어도 안아프다는 딸의 모습...  필자가 최초로 접한 프린세스메이커는 일본어판이었다.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은 무슨얘긴지 모르고 넘어갔으나... 그저 내 눈앞에 추우면 옷 갈아입혀주고

더우면 덥다고 바캉스 보내주고 하는 딸이 계속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것 하나만으로 푹 빠져서

게임을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보면 우중충하고 도트가 지저분해보이지만, 당시의 컴퓨터 능력치를 최고로 끌어올린 눈물의 노가다 그림.. 이것이

16색을 써서 만든 게임이라는것이 믿겨지는가..  저 수많은 색의 느낌을 점과 점을 섞어 만드는 병치혼합으로 표현해낸 디자이너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 그림은 유명한 바캉스 장면으로, 당시 하드 파킹프로그램으로 많이 쓰여서... 어지간히 게임 하는 사람의 집에는 거의 이 화면이 파킹으로 쓰였던 기억이 난다.




필자가 처음으로 키운딸은... 뭐 어찌 키우는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키우다보니..

그만 거리의 여자가 되고 말았다.

당시의 필자가 받은 충격이란 실로 엄청난것이었으니...아니.. 내가 내딸을 거리의 여자로 키우다니!!!

실제 당시 첫딸을 키워냈던 시간이 밤 10시... 그러나 도저히 이대론 잠이 안올것 같아서 그때부터 새롭게 리셋하고 딸을 키우기로 하였으니... 새벽을 넘어 밤이 꼬박 새도록 다시 키웠던 두번째 딸의 엔딩은


하급귀족의 부인이었다. 당시는 이것만 되어도 감지덕지... 온몸에 뿌듯함이 넘치면서.. 그래 행복하게 살아라.. 하는 아빠미소가 번지던 그때 기억이 난다.





프린세스메이커 1의 히트를 등에 업고 등장한 프린세스 메이커 2탄...

시리즈중 최고의 인기와 완성도로 공전의 히트를 친, 시리즈 최고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그 후 나온 3탄, 4탄, 5탄...

모두 최고의 경쟁작은 항상 이 PM2 였다.



여지없이.. 여기에도 거리의 여자 엔딩이 있다. 사실 .. 가장 쉬운 엔딩이다.

그냥... 체력만 신경쓰면서 계속 이상한 주점 아르바이트만 시키면 되니까...

돈은 넘치게 많이 벌기에 딸 키움에 지장은 없으나...

엔딩에서의 그 씁쓸함은... 당해본 아버지(?)가 아니면 모른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엔딩인것이다.




또하나의 충격의 엔딩... 너무 무자수행을 많이 시켜 공격력이 높아진데다 도덕성이 떨어지면... 바로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 마왕을 때려눞히고 자신이 마왕이 되는 충격적 엔딩을 볼 수 있다. 




대망의 최고엔딩인 여왕엔딩... PM1에서 왕자에게 결혼 시키는게 목표였는데 PM2는 아예 나라를 집어삼킬 재목으로 키우는게 최종목표.. 스케일이 많이 커졌다. 



PM2에선 직업엔딩 따로, 결혼엔딩 따로가 있었는데.. 여기서도 일반적인 사람과 결혼하는게 아닌, 집사와 결혼하는 엔딩, 그리고 심지어 아버지와 결혼 엔딩까지 있다.

어차피 PM시리즈가... 전쟁고아, 요정이 보내준 아이 등을 키우는것인지라... 엄밀히 따지면 근친상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와 결혼한다는 내용은 당시로서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이 게임의 악명(?)을 높였었다.

집사와의 엔딩... 연애인들이 자신의 매니저와 결혼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게 그런 케이스 아닐까.. ㅎㅎ




PM2는 전작과 달리 특이한 조건을 맞추면 얻을수 있는 매력적 드레스들이 많았다. 이를 얻어 딸에게 갈아입혀보는것도 또하나의 낙(?)이었다.

위는 용에게 얻을수 있는 용의 레오타드. 엄청난 리셋의 노력이 필요했다.



극악의 확률로 나오는... 악마를 잡았을때 나오는 악마의 드레스.




평범한(?)옷중에 가장 화려한 옷이었던 연회용 드레스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되었던 배덕의 드레스 (국내에선 매혹의 드레스로 번역이 바뀌었다)

물론, 누드패치 프로그램같은 편법을 이용하여 그이상(?)을 미리 본 사람들은 별 감흥이 없겠으나.. 이거 구해서 입혀놓고 설레였던 초보아버지들 참 적지 않았을것이라 본다.




딸의 여러가지 표정변화... 이 표정 하나하나에 아버지는 좌불안석... 밝게 웃으며 아버지, 고마워요. 할때면 정말... 뭘 사줘도 안아까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이 바로 딸이 벌어온 돈이었지만 말이다. 대체 주인공은 뭘하기에 딸에게 돈벌어오라 시키기만 하는건지 의아하게 생각했던게 기억난다.



그후 나왔던 PM3 여기서부턴 필자는 솔직히 PM시리즈라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아기자기하게 딸 키우던 그 설렘이 여기선 없는것이다.

그래서 그 후속 시리즈는 그냥 참고상 그림만 놓는다.





최악의 혹평을 받았던 PM4, 원화일러스트 작가의 개인적 사정으로 원화작가가 바뀌면서 기존 프메팬들에게 정통 프메가 아니라는 외면을 받았다. 필자 또한 정통 프메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 게임 시스템도 그닥 인정받지 못한 .. 최고 참패작



절치부심하여 기본으로의 회귀를 외치며 나온 프메5... 해보고 싶긴 하나... 이제 이런 육성시뮬게임에 시간들여 몰입하기 힘든 환경이 되다보니... 아쉽지만 접해보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가지도 않고...

필자에겐 역시...     

 최초의 두근거리는 설렘을 주었던 프메 1탄, 그리고 최고의 몰입도를 가지며 수많은 딸을 시집보낸 프메2가 가장 명작으로 남는것 같다. 

그때의 그 감성을 기억하는 분께 이 포스팅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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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포스힐러 2013. 9. 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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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EXEX - OST


1. BATTLE CRY - ALL HANDS TO STATION!

2. THINK TANK

3. BREEZE

4. BOOST UP! -GIMME A HIGH FIVE

5. PLEASE

6. WITH ZERO G

7. HEY! MR. WONDERFULL

8. CRYSTAL CLEAR

9. HELP ME QUICKLY!

10. LET'S GIVE'EM THE BIZ

11. I DARE YOU

12. THE POLYGONTAL ENERGY

13. NO MORE TIME

14. HAPPY DAYMARE

15. OUT OF THE BLUE FROM THE HYPERSPACE JUMP

16. BLOW YOUR TOP

17. SHAK'EM RETRO-ROOP!!

18. GO FOR BROKE!

19. KEEP ON MECHANICAL DANCING !

20. FREE AS A BIRD

21. BLACK EIGHT BALL

22. BIRTHDAY SUITS

23. MY KUTIE PIE IRENE

24. TIME TO PARTY HEARTY!!

25. 6 FEET UNDER

26. CAN'T WAIT UNTIL NEXT SATURDAY

27. JACK POT! - MAKE A KILLING!!

28. WAY TO GO! -CARRY THE DAY!!

29. SNAPPER


ARRANGE VERSION

30. BATTLE CRY - ALL HANDS TO STATION!

31. BREEZE

32. HAPPY DAYMARE

33. TIME TO PARTY HEARTY!!


부록

34. 자기소개

35. 미사용음원




XEXEX... 이거 발음도 상당히 어려운데... 자칫하면 이상하게 들릴수 있는 제목의 게임을 소개한다.

때는 1991년.. 오락실에 들어갔다가 귀를 짱짱하게 자극하는 강렬한 사운드의 게임을 보게 되었다. 사실 사운드도 사운드였지만... 

그보다 더 눈길이 갔던것은 압도적인 그래픽이었다............. 라고 말하면 사실 좀 거짓이다.

왜냐면... XEXEX의 그래픽이 화려했던건 사실이나... (아래 그림 참조)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비쥬얼을 가진 게임으로 1스테이지의 3차원적 배경은 가히 압권이었다.



그래픽보다 먼저 눈이 갔던것이...

게임 데모에 나오는...

"와타시노 와쿠세이 다스케테..." (나의 행성을 구해주세요...)

라는 음성과 함께 나오는 일레인 공주였다. (이레네 공주라 알려져있는데.. 영문판에는 ELAINE 으로 나온다. 일레인을 잘못 읽은 결과..)




지금보면 그닥 예쁜 비쥬얼도 아닌데... 당시는 왜그리 예뻐보였는지... 한참을 몇번이고 데모를 보려 오락기 앞에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두손을 새초롬하게 모으고 아련한 눈빛으로 말하는 청순가련형여인의 부탁...

이것을 그냥 지나치면 남자가 아니다!


이 포즈가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켰는지.. 이 이후로 두고두고 일레인 공주가 회자 되는데... 최근엔 코나미의 짜깁기식 캐릭터 슈팅게임에도 초빙(?) 되었다.





일레인 공주의 행성을 침공해온 악당 클라우스 ... 이거이거... 환몽전기 레다 (환몽전기 레다 - 애니메이션계 진로를 꿈꾸게 한 작품  참조)에서 캐릭터 베낀거 아닌가?

갖은 폼은 다 재고 나오는데... 

게임 스테이지 클리어 중간중간에 이남자가 일레인 공주를 붙잡아 놓고 중간중간 폭력을 행사하는 씬이

나오는데... 당시로서는 정말 충격적으로 뇌리에 박히는 데모영상이었다.





뭔 전기채찍을 때리는건지 옷이 다 찢겨나가는데... 




게임 후반부에 나오는 비주얼... 시간이 없어요. 빨리 와주세요... 하는 장면... 남자에게 인서트 코인을 부르는 비주얼이라 생각한다. 코나미... 어떻게 슈팅게임에 이런 시나리오를 넣고 남자의 마음을 자극할 생각을 했는지... 남자의 심리를 자극하는 그들의 상업성.. 지금봐도 대단하다. -가만.. 근데 이 전개는... 남코의 슈팅게임 페리오스(마성전설 1 - 기념비적 슈팅게임 참조 )

 에서도 한번 나왔던 전개 아닌가? 하기사... 히로인이 붙잡혀있고 히어로가 구하러 간다는 설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애용되던(?) 설정이니 궂이 베낀것이라 이야기할수는 없겠다.. 




최종보스를 격파하고 나면...



그 안에서 공주가 빙글빙글 돌며 튀어나온다.

그리고 공주를 맞이하러 가면 나오는 엔딩...





생각지도 않게 엔딩데모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어라? 

전투기의 촉수처럼 생긴 무기가 요정이었다구?  뭔 이런 생뚱맞은...

당시로선 충격의 연속이었던 데모였다.


나중에 알게된 일인데 특이하게도 이 게임은... 단 한명의 여자 성우가 모든 음성을 녹음했다고 한다.

일레인 공주의 목소리도, 클라우스의 목소리도, 그리고 게임에 나오는 스피드업! 호밍미사일!

이런 효과음성까지도...

코나미... 그리 예산이 부족했던것인가... 눈물이 앞을 가린다.




xexex의 업소용 기판... 이것은 영문판 기판이고... 일본 내수용 기판이 따로 있는데..

특이한건...

영문 기판은 무기가 멀티샷,호밍미사일 정도밖에 없으며 대신 게임중 컨티뉴가 가능하다.

죽어도 돈 넣고 컨티뉴만 하면 딱 그 시점에서 이어할수 있다.

즉, 돈만 많으면 얼마든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소리..

하지만 일본 내수용은

무기가 그라운드 레이저, 쉐도우 레이저등 화려하고 독특한 것들이 많은데, 단점은 게임중 컨티뉴가 불가능하다는것이다.

게임중 죽으면, 일정한 시점으로 빽을 해서 시작하는통에...(그라디우스 시리즈 같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슈팅에 일가견이 없다면 엔딩을 보기 대단히 힘들다.


국내에는 영문기판이 복제되어 풀려있는데.. 필자가 보유한 기판도 영문기판이란게 좀 아쉽다.

일본 내수용 기판은 매니아들 사이에선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근데.. 뭔.. 음악은 소개 안하고 게임 이야기만 했는지...

음악은... 말 그대로 기판에서 나오는 음원 그대로의 음악에 30,31,32,33번 트랙은 어레인지 버전이다.


오리지날 음원 자체가 워낙 훌륭하기에 어레인지가 상대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을정도..


이 게임을 아시는 분들.. 특히 이 블로그를 종종 들러주시는 xexex님께 이 포스팅을 바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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